친구와 스크립트 언어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는데, 느낌이 와 닿아서,
충동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스크립트 언어라는 것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의 스크립트 언어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합니다.
예전에는 언어는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컴파일 언어와 인터프리터
언어로 말이죠. 컴파일 언어는 대부분 시스템을 건드릴 수 있는 저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고, 인터프리터 언어는 그렇지 않고 속도도 훨씬 느리죠.
그러나 이런 구분이 이제는 조금 모호해졌습니다. 스크립트 언어로도
얼마든지 운영체제에서 제공하는 수준에 접근할 수가 있게 되었죠. bash와
펄이 대표적으로 그런 언어였습니다. 점점 다른 언어들과의 교환 메커니즘이
발달하게 되고 이제는 스크립트 언어들이 풀언어(서로 다른 언어로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이어 붙여주는 프로그램)로써 자주 활용되기도 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스크립트 언어를 다루게 된 발단은 학부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당시 저는 수동으로 html을 대충 쳐서 만든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여기에 제가 해야 될 일들의 목록을 적어 놓았습니다. 물론
홈페이지 내에서 쉽게 이것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바보같은 홈페이지였죠. 제가 그 당시 한 일은 이 html에서 grep 명령을
이용하여 할일 목록의 내용만을 추출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리눅스
시스템을 터미널로 접속하면 시작하자마자 날짜별로 해야 될 일의 목록이
터미널에 출력되고 저에게 압박을 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업무를 보게 되었는데, 저는 마음대로
컴파일러를 설치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업무 내용상 관리자 권한이
주어지는 행운아였지만, 감시가 심한 상사는 컴퓨터들을
모니터링합니다. cmd.exe만 실행하여 검은 화면만 떠도 해킹으로 의심을
하는 상황이니까요.(결국 커맨드 창 배경화면을 흰색으로 바꾸니까
메모장처럼 보여서 의심을 안 받더군요.) 결국 일과 시간이 끝나고 나면,
메모장에 적힌 소스를 보면서 두뇌로 컴파일 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찾은 것입니다.
그 당시 하는 업무는 매우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손님이 오시면 MS 워드
문서에 있는 계약서 양식에 손님의 수많은 개인정보를 적습니다. 개인 정보
종류가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서비스
요청 문서를 만듭니다. 똑같은 정보를 한번 더 입력합니다. 그리고 나서
인쇄해서 문서를 파일에 넣고, 이것을 전산환경으로 찾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MS Access 데이터베이스에 똑같은 내용의 정보를 다시 다 입력해
넣습니다. 그 뒤에, 종이로 만들어진 일지 표에 똑같은 내용의 정보를
손으로 다 써 넣습니다. 개인정보 항목이 적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상당히
많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두 곳에는 정보가 들어가지 않아서 데이터의
일관성을 해치기도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MS 오피스 제품군은 VB 스크립트라는 언어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MS Access는 덤으로 SQL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MS 오피스가 떠 있을 뿐이었으므로, 이것은 하얀 배경
화면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MS Access에 자료를 한번만
입력하고 Report 기능 등을 이용하면 필요한 다양한 양식의 문서를 동일한
정보로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날짜 계산 같은 것도 자동으로 줍고,
일을 넘겨받는 부서에서 필요한 정보를 요약해서 볼 수 있는 문서도 인쇄가
됩니다. 덕분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 손님이
서비스를 받고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존의 1/4 수준으로 떨어졌고,
만족도도 올라갔습니다. 저는 이것 이외에도 업무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습니다. 직속 상관은 이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슈퍼바이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느 순간
슈퍼바이저 얘기가 고객에게서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이 훨씬 좋아지고
왠지는 모르지만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이유로 여러번 칭찬을
받았습니다. 조금 이상한 이유로 포상도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이제 제 머리속의 VBScript는 잊혀졌습니다. 이제 제가 주로
스크립트 언어를 제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용도는 시스템 관리입니다. bash와
파이썬, 루비, 펄 등으로 하나하나 만들어두면 나중에는 꽤
쓸만해집니다. 작은 코드조각이지만 유용하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C나 C++
등으로 작성된 프로그램들을 바깥에서 감싸는 랩언어(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가 되겠군요.
음악 듣는 프로그램인 아마록에서도 파이썬 스크립트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으로 듣고 있는 음악의 가사를 긁어오거나, 앨범 커버
그림을 다운받아 올 수 있습니다. 가수에 대한 정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마록에서 앨범 커버를 가져오는 곳은
아마존입니다. 그런데 국내 음악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앨범 커버가 나오지
않죠. 웹에서 다운 받은 것들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CD에서 추출한 경우에도
가사가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제가 국내 가요들을 재생할 때 옆에 가사가
표시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록 소스 코드를 수정해서 긴긴
시간 다시 컴파일을 해야 할까요?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답니다. 파이썬 등으로 스크립트만 하나 작성해서
아마록에 끼워 주면 됩니다. 노래 제목이나 가수 이름으로 검색해서 얻은
텍스트 데이터에서 정규식 등을 이용해서 필요한 그림의 URL이나 가사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이맥스 시스템에서 elisp의 역할에 놀랐었는데, 이제 굳이 elisp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macs와 같이
커스터마이징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가 무척 쉬워졌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lisp보다 좀 더 쉽게 와 닿을 수 있는 형태의 언어로
말입니다.
물론 스크립트 언어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크립트 언어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크립트 언어로
한다고 하면 절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들이 이제는 되고 있거든요.
삶의 묘미를 찾고 계신 분들은 스크립트 언어 하나쯤 배워 놓는 것은
어떠신가요? 배워서 지금 당장 웹 영어 사전에서 내용을 긁어오는
스크립트를 작성하셔서 편리하게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정말 컴퓨터에 내가
귀찮은 일들을 명령을 내리면 충실히 수행해주는 느낌. 어릴 때 누구나
꿈꾸어 왔던 로봇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요.